하춘화 프로필 연령 결혼 부자녀 아버지 어머니 가족 고향 학력 집 기부 공연

한국의 트로트 리빙 레전드 ‘하춘화’ 한국의 트로트 리빙 레전드 ‘하춘화’

 

트로트 가수 하춘화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트로트계의 살아있는 리빙 레전드다. 만 6세의 이른바 꼬마 가수라는 칭호를 얻으며 한국뿐 아니라 세계 최연소로 데뷔했다. 이후 1991년 8천여 차례의 공연 기록을 세웠고 기네스북에도 올라 화제가 됐으며 평양 공연을 위해 북한 땅을 처음 밟은 한국 가수이기도 하다. 그동안 ‘잘했어, 잘했어’ ‘나를 버린 남자’ ‘영암아리랑’ ‘하동포구 아가씨’ ‘항구의 여자’ ‘타인의 마음도 모르고’ 등 수많은 히트곡을 보유한 하춘화는 다양한 기부 활동과 무료 공연을 계속 펼치는 등 선행에 있어서도 큰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 트로트 가수 하춘화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트로트계의 살아있는 리빙 레전드다. 만 6세의 이른바 꼬마 가수라는 칭호를 얻으며 한국뿐 아니라 세계 최연소로 데뷔했다. 이후 1991년 8천여 차례의 공연 기록을 세웠고 기네스북에도 올라 화제가 됐으며 평양 공연을 위해 북한 땅을 처음 밟은 한국 가수이기도 하다. 그동안 ‘잘했어, 잘했어’ ‘나를 버린 남자’ ‘영암아리랑’ ‘하동포구 아가씨’ ‘항구의 여자’ ‘타인의 마음도 모르고’ 등 수많은 히트곡을 보유한 하춘화는 다양한 기부 활동과 무료 공연을 계속 펼치는 등 선행에 있어서도 큰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

하춘화 프로필 하춘화 프로필

1957년 4월 4일생으로 2024년 8월 8일 기준으로 현재 하춘화의 나이는 만 67세, 우리나라 나이로 68세가 되었다. 고향은 전라남도 영암군이고, 학력 출신은 서울 강북구에 소재한 서울수송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 동대문구 정화여자중학교, 서울 송파구 일신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에는 경남대학교 병설 산업전문대학에서 가정학을 졸업한 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가정학,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공연예술학 석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춘화의 가족관계를 보면 아버지는 2019년, 어머니는 2023년에 돌아가셨지만 두 분 모두 향년 101세로 돌아가셨다. 남매로는 네 자매 중 둘째이며, 하춘화는 남편과 1995년 결혼했고, 아이는 늦은 나이에 결혼해 얻지 못했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은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래미안리더스원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으며, 신체 사이즈 중 키는 162㎝, 몸무게 50㎏이다. 이 밖에 종교는 천주교(세례명 세실리아), 혈액형은 A형이다. 1957년 4월 4일생으로 2024년 8월 8일 기준으로 현재 하춘화의 나이는 만 67세, 우리나라 나이로 68세가 되었다. 고향은 전라남도 영암군이고, 학력 출신은 서울 강북구에 소재한 서울수송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 동대문구 정화여자중학교, 서울 송파구 일신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에는 경남대학교 병설 산업전문대학에서 가정학을 졸업한 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가정학,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공연예술학 석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춘화의 가족관계를 보면 아버지는 2019년, 어머니는 2023년에 돌아가셨지만 두 분 모두 향년 101세로 돌아가셨다. 남매로는 네 자매 중 둘째이며, 하춘화는 남편과 1995년 결혼했고, 아이는 늦은 나이에 결혼해 얻지 못했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은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래미안리더스원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으며, 신체 사이즈 중 키는 162㎝, 몸무게 50㎏이다. 이 밖에 종교는 천주교(세례명 세실리아), 혈액형은 A형이다.

아버지와의 각별한 애정 아버지와의 각별한 애정

하춘화의 부모님은 둘 다 같은 해 101세의 나이로 돌아가셨고, 꽤 오랜 장수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 출연한 하춘화는 아버지가 5년 전 돌아가셨는데 아직도 종잡을 수 없었다고 심경을 전하며 매일 아버지가 옆에 있는 것처럼 목소리가 들린다고 털어놨다. 이어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가수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히며, 이전 폭파 사고 당시 극장 지붕이 내려앉는 위험한 순간에 아버지가 자신을 끌어안고 비상구를 뒤집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하춘화의 부모님은 둘 다 같은 해 101세의 나이로 돌아가셨고, 꽤 오랜 장수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 출연한 하춘화는 아버지가 5년 전 돌아가셨는데 아직도 종잡을 수 없었다고 심경을 전하며 매일 아버지가 옆에 있는 것처럼 목소리가 들린다고 털어놨다. 이어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가수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히며, 이전 폭파 사고 당시 극장 지붕이 내려앉는 위험한 순간에 아버지가 자신을 끌어안고 비상구를 뒤집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어린시절과 데뷔 어린시절과 데뷔

하춘화는 어린 시절 이유 없이 울다가 노래가 주위에 흐르자 울음을 그칠 정도로 음악과 가수로서 재능을 숨기고 자랐다. 1960년 일어난 4.19 직후 부산 제5육군병원에서 부상 학생과 시민들을 위한 위문 공연으로 다시 만 5세 어린이였던 하춘화가 노래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 신문사 기자가 ‘장난꾸러기 천재 꼬마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어 처음으로 하춘화라는 이름의 등장을 알렸다. 이듬해 1961년 동화예술학원에서 정식 음악 공부를 시작한 6세 하춘화는 기타 연주의 8세 김영환, 아코디언의 9세 정성과 함께 3대 영재로 불렸고, 그렇게 ‘하춘화와 삼남매’ 이름까지 달고 그룹을 결성해 활동했다. 당시 첫 무대 장소인 서울 종로가에 위치한 청일극장 주위에는 이미 인기와 소문이 퍼졌고, 하춘화와 삼남매를 보기 위해 인파가 북새통을 이루는 풍경이 그려졌다. 하춘화는 어린 시절 이유 없이 울다가 노래가 주위에 흐르자 울음을 그칠 정도로 음악과 가수로서 재능을 숨기고 자랐다. 1960년 일어난 4.19 직후 부산 제5육군병원에서 부상 학생과 시민들을 위한 위문 공연으로 다시 만 5세 어린이였던 하춘화가 노래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 신문사 기자가 ‘장난꾸러기 천재 꼬마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어 처음으로 하춘화라는 이름의 등장을 알렸다. 이듬해 1961년 동화예술학원에서 정식 음악 공부를 시작한 6세 하춘화는 기타 연주의 8세 김영환, 아코디언의 9세 정성과 함께 3대 영재로 불렸고, 그렇게 ‘하춘화와 삼남매’ 이름까지 달고 그룹을 결성해 활동했다. 당시 첫 무대 장소인 서울 종로가에 위치한 청일극장 주위에는 이미 인기와 소문이 퍼졌고, 하춘화와 삼남매를 보기 위해 인파가 북새통을 이루는 풍경이 그려졌다.

공연 8500회 기록 쓰기 공연 8500회 기록 쓰기

하춘화는 1991년 8천 회의 개인 공연을 개최하여 한국 가수로서는 기네스북에 올랐다. 1974년 5월에 진행한 아시아 극장에서의 첫 개인 공연이 8천 회 공연의 시작이었으며, 이후 전국을 돌며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반년 동안에만 무려 1,500회 공연을 진행하였다. 현재는 8,500회 공연으로 기네시북을 갱신하고 심지어 공연도 많고 부를 곡이 많다 보니 가사를 다 외우지 못해 무대 도중 가사 실수를 한 순간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한편 1977년 11월에는 이리역 대폭발 참사 사건 때 삼남극장 분장실에서 공연 준비를 위해 대기하다가 극장이 붕괴되어 참사를 겪을 뻔했는데, 당시 함께 무대를 준비하던 개그맨 이주일의 극적인 도움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춘화는 1991년 8천 회의 개인 공연을 개최하여 한국 가수로서는 기네스북에 올랐다. 1974년 5월에 진행한 아시아 극장에서의 첫 개인 공연이 8천 회 공연의 시작이었으며, 이후 전국을 돌며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반년 동안에만 무려 1,500회 공연을 진행하였다. 현재는 8,500회 공연으로 기네시북을 갱신하고 심지어 공연도 많고 부를 곡이 많다 보니 가사를 다 외우지 못해 무대 도중 가사 실수를 한 순간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한편 1977년 11월에는 이리역 대폭발 참사 사건 때 삼남극장 분장실에서 공연 준비를 위해 대기하다가 극장이 붕괴되어 참사를 겪을 뻔했는데, 당시 함께 무대를 준비하던 개그맨 이주일의 극적인 도움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기부와 무료공연으로 선행을 이어온 하춘화 기부와 무료공연으로 선행을 이어온 하춘화

머리말에 남긴 것처럼 하춘화는 기부천사로 알려져 있다. 다양한 공연과 함께 이리역 폭발 사건 이후 이리 이재민들을 위해 자선 쇼를 개최하고 자선 쇼에서 발생한 모든 수익금을 기부했으며, 그녀의 선행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불우이웃을 위한 무료 공연을 700회 이상 진행하였으며, 2001년 데뷔 40주년 공연의 수익금을 모두 불우이웃을 위한 성금으로 기부하기도 하였다. 하춘화가 직접 방송에 출연해 언급한 기부 금액이 40년간 무려 200억원이라고 밝혀 화제가 됐다. 머리말에 남긴 것처럼 하춘화는 기부천사로 알려져 있다. 다양한 공연과 함께 이리역 폭발 사건 이후 이리 이재민들을 위해 자선 쇼를 개최하고 자선 쇼에서 발생한 모든 수익금을 기부했으며, 그녀의 선행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불우이웃을 위한 무료 공연을 700회 이상 진행하였으며, 2001년 데뷔 40주년 공연의 수익금을 모두 불우이웃을 위한 성금으로 기부하기도 하였다. 하춘화가 직접 방송에 출연해 언급한 기부 금액이 40년간 무려 200억원이라고 밝혀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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